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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의 필리핀 주둔에 대한 양국 대통령의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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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지 w.부시와 코라손 아키노의 필리핀 미군 철수
: 세계 2차 대전과 베트남 전쟁의 핵심지인 수빅만과 클라크 해군기지 철수

제2차 세계대전 후 갓 독립한 필리핀은 외부로부터의 공격에 대해 미국의 지원이 필요했다. 그 결과 양국은 1947년 3월 군사기지협정을 체결했다. 필리핀은 미국이 제공하는 해군·공군기지를 통해 위험으로부터 보호받는 동시에 군사원조협정을 통해 필리핀의 경제적 성장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고자 했다. 미국은 필리핀에서 자유세계와 민주주의를 가장 모범적으로 지탱해주는 나라로 받들어 졌다.
그러나 필리핀의 정치 지도자들이 미국에 대한 우호적인 입장을 지속적으로 강조했던 것과 달리 필리핀 국민들은 미군은 다만 미국의 국익을 위해 필리핀에 주둔하고 있다고 여길 뿐이었다. 미군은 내부의 각종 반정부 단체들의 반란을 저지하는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1972년 마르코스가 비상계엄령을 선포, 독재체제로 나갔을 때 미국은 마르코스를 지지했다. 미국이 이 비상계엄정권을 지지한데 대해, 필리핀 국민은 미국에 매우 실망했다. 이와 같은 상황이 지속되자 정치 지도자들과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불평등한 조항이 포함된 미국과의 군사기지협정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기 시작했고, 이는 당시 필리핀 사회의 내부에 형성되어 있던 반미 정서로 인하여 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받으며 이루어졌다.
많은 국민들과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필리핀 상원의 야당의원은 필리핀에서 미군기지 반환서명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1981년 계엄령은 해제되었으나, 정권은 군부의 힘에 더욱 의존하게 되었다.
1983년 베그노 아키노의 암살과 군부와의 연계성은 반정부 및 반기지 운동을 더욱 강렬하게 만든다. 1984년 베그노 아키노를 지지하는 야당의원들이 이 미군기지 반환운동을 주도했다. 1987년 필리핀 민중은 2월 혁명을 성공시키면서, 베그니노 아키노 상원의원의 부인 코라손 아키노 부인을 대통령으로 뽑는다. 마닐라 시민들에 의해 말라카냥 궁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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